정사삼국지 - 중국 10대 부호 양기의 최후(146~159)


전에 이고가 환제의 등극을 반대하다가 쫓겨난 뒤 사람들은 대부분 양기에게 굽히기만 했는데, 유독 두교만은 그렇지 않았기에 조야에서 모두 그를 의지했다. 이후 양기가 환제가 제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봉읍이 1만 3천 호가 늘고, 양기의 동생 둘과 양기의 아들도 열후로 봉해지자 두교가 이를 간했으나 그의 간언은 무시됐다.

얼마 뒤 양기의 또 다른 여동생이 황후가 됐다.(언니는 태후) 이에 양기가 화려하게 양씨를 등극시키려고 했으나, 태위 두교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도를 들어 들어주지 않았다. 또 양기가 두교에게 부탁해 범궁을 상서로 삼으려고 했으나, 두교는 범궁이 뇌물을 받았었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양기가 열 받아 마침내 경사에 난 지진을 이유로 들어 두교를 짤라 버렸다.

환관 당형과 좌관이 함께 두교가 예전에 환제의 등극을 이고와 함께 반대했었다고 참소했다. 이에 환제도 역시 두교에게 원한이 생겼는데, 마침 전에 탈락했던 후보 유산을 황제로 옹립하려는 일이 벌어졌다. 양기는 이를 이용해 그동안 눈에 거슬리던 이고와 두교를 무고해서 이들도 역모에 관여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고는 잡혀서 옥에 갇혔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의 무죄를 호소했기에 태후가 이고를 사면시켜줬다. 이에 경사의 시가지와 골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이를 보니 이고의 명성과 덕망이 대단했기에 양기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또 다시 주청해서 역모사건에 얽어매 다시 이고를 잡아들였다. 결국 이고는 옥중에서 죽었다. 이후 양기는 사람을 시켜 두교에게 자살하면 처자식들은 온전할 거라며 협박했다. 그러나 이를 두교는 듣지 않아서 결국 잡혀가 이고처럼 옥중에서 죽었다.
 

이후 양기는 이고와 두교의 시체를 성 북쪽 사거리에 버리곤, 이곳에 와서 곡하는 이가 있으면 죄를 묻겠다며 엄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노력했기에 결국 고향에 돌아가서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처럼 양기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낸 이에겐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해줬으며, 자제하라는 충고를 들으면 무시했다. 또 자신에게 인재를 천거하지 않은 이는 체포한 뒤 집안사람들까지 60여 명을 죽여 버렸고, 이런 꼴을 피해서 먼저 자살하는 경우엔 특별히 처자식들을 살려 줬다. 자세히 적기엔 너무 많아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으나, 대충 양기가 어떤 인간인지는 전달됐을 거다.

양기는 권세가 대단했기에 당연히 그의 재산도 엄청났다. 양기는 식읍이 3만 호였고, 양기의 처인 손수도 양성군으로 책봉된 후 양적현의 조세도 받아먹음으로서 연간 수입이 5천만 전에 이르렀다. 이들은 이런 막대한 부를 가지곤 서로 경쟁하듯이 마주 보고 집을 지은 뒤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금과 옥과 진기한 물건들을 가득 쌓아두었다. 그리곤 드넓은 토지를 개척해서 어마어마한 땅을 소유했고, 노비도 수천 명을 뒀다.

이렇게 부자이면서도 양기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남의 재산에도 손을 댔다. 사손분이란 부자가 살았는데, 처음에 그에게 5천만 전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에 사손분이 3천만 전을 빌려줬더니, 양기는 분노한 뒤 사손분에게 누명을 씌워서 잡아다가 고문하며 그의 형제들은 옥중에서 죽게 했다. 이렇게 해서 양기는 사손분의 모든 재산인 1억7천여만 전을 몰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기의 권력은 더욱 강해져 예전의 소하가 유방에게 받은 특혜처럼 입조할 때 총총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됐고, 칼을 차고 나막신을 신고 어전에 들어와도 됐으며, 알현할 때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괜찮았다. 결국 나중엔 양기의 한 집안에서 전후로 일곱 명의 열후, 세 명의 황후, 여섯 명의 귀인, 두 명의 대장군, 부인과 딸로 식읍을 받고 군으로 불린 사람이 일곱 명, 공주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세 명에 나머지 구경, 중랑장, 하남윤과 경조윤, 교위 등을 지낸 이가 57명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거의 20년을 지내왔으니, 환제도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불만이 생기게 됐다. 이 불만은 태사령 진수를 양기가 멋대로 죽인 거로 더욱 커졌다가 마침내 양기가 남의 딸을 자기 딸로 만들려고 사람들을 죽이려는 것에 폭발한다.
 

마침내 환제는 몰래 5명의 환관을 모아 피의 맹세를 한 후 양기를 죽이기로 결의한다. 이를 양기는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이에 대비해서 중황문 장운에게 성에 들어가 숙직하면서 변란에 대비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이는 황제의 의향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한 거라서 도리어 꼬투리로 잡혔고, 환제는 이를 이용해 병사들을 파견해서 양기의 집을 둘러쌌다. 결국 양기는 자신의 처 손수와 함께 자살했고, 양씨와 손씨의 종친들은 모두 죽었다. 그 뒤 양기의 재물을 거둬서 처분하니 무려 30여 억 전을 거둬들일 수 있어서 조세의 반을 감해도 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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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反영웅 2009/10/14 07:11 # 답글

    남존여비로 잘 알려진 중국에서 뜻밖에 여자를 군으로도 봉하는 제도가 있었군요-_-;;
  • 새로운나 2009/10/16 06:31 #

    네 황제의 유모나 외척들이 주로 군으로 봉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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