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제가 양기를 죽임으로써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정치를 기대하게 됐다.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양기를 죽일 때 주축이 됐던 환관인 선초, 서황, 구원, 좌관, 당형은 모두 현후로 봉해졌는데, 세상에선 이들을 5후라고 불렀고 정치도 이들을 위주로 돌아가게 됐다. 이외에 양기를 죽일 때의 공으로 다른 환관들도 향후로 봉해졌기에 결국 권력은 외척에서 환관으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이들은 이전에 양기 등의 외척들이 했던 대로 자신들과 가까운 이들을 각지의 지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를 통해서 민초들을 수탈하고, 호족들로부터 뇌물을 받고는 잘못을 묵인해주면서 자신들의 부를 늘려갔으니, 그 결과 환관들은 대토지를 소유하면서 수많은 노비를 두게 되었다. 당시 자영농들은 호족들의 고리대로 인해 토지를 잃으면서 소작농으로 전락해갔는데, 환관들의 이러한 처사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고, 이 때문에 백성들은 도저히 못살겠기에 점점 도적으로 변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바꾸려고 노력을 했다. 백마현령 이운은 환제가 환관들을 중용하는 것을 간하였으나, 이는 도리어 환제의 노여움을 사서 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게 됐다. 이를 말리던 두중도 똑같은 꼴을 당해 결국 두 사람 모두 옥중에서 죽었고, 진번, 양병, 목무, 상관자도 상소를 올려 용서해주길 청했다가 진번과 양병은 짤렸고, 목무와 상관자는 녹질이 2등급 깎여버렸다. 이 외에도 많은 간언이 있었지만, 환제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는 지방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5후인 선초의 조카 선광이 제음태수가 돼 개판을 치는 것을 연주자사 제오종이 조사한 후 탄핵하려다가 도리어 모함을 당해 귀양을 가게 된다. 이때 귀양지의 태수인 선초의 외손자 동원이 자기 일족을 제오종이 탄핵하려 했기에 오면 죽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제오종의 옛 관리였던 손빈이 제오종이 죽을까봐 빼돌렸고, 제오종은 이후 수년 뒤에 사면령이 내려질 때까지 이곳저곳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살아갔다. 이외에 다른 이들도 환관들과 관련된 불법을 처벌하려다가 훅 간 경우가 많았다.
당시 후한의 문제는 환관만이 아니었다. 날씨의 이변으로 많은 재해가 발생했는데, 홍수, 메뚜기, 역병, 지진, 우박 등이 여러 번 발생해서 안그래도 많지 않은 수확량이 더욱 줄었기에 백성들은 먹고 살 게 없게 됐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경우도 빈번했고, 특히 사예와 예주에선 아예 기근 때문에 죽은 이가 10명 중 4~5명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가문의 씨가 마르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니 조정에서 나서서 구휼해야 될 형편이었지만, 조정의 재정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당시 이민족들의 반란도 많아서 군비로 인해 많은 돈이 소모됐는데, 특히 강족들의 반란이 만만치 않아서 이에 관련돼서 투입된 돈이 영초 연간 이래 14년 동안 240억 전이 투입됐고, 영화 연간 이후 다시 7년 동안 80여 억 전이 사용됐다. 이렇게 많은 돈이 소모됐지만, 반란은 여전히 잠재우지 못해서 계속 발생했고, 이로 인한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기에 조정에선 대신들의 봉록을 줄이고, 왕후의 반년 치 조세를 빌려서 쓸 정도였다. 이걸로도 부족하니 관내후, 호분, 우림제기, 영사, 오대부를 팔아서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앙정치의 타락으로 지방도 마찬가지가 돼 제대로 된 인재들은 발을 붙이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런 이들과 호족들의 공존으로 백성들은 더욱 힘들어진 상황에 재해까지 겹치니 결국 이탈하는 이가 많아져서 조정의 수입은 갈수록 줄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남은 이들을 더욱 쥐어짰으나, 이는 민중들과 이민족들의 반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서 조정에선 또 막대한 재정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다 간신들에게 모함받아서 능력있는 이들은 물러나고, 허접한 이들이 자리를 차지했기에 반란도 역시나 제대로 진압하지 못해서 계속 발생했고, 이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돈은 들여도 효과는 별로 못보는 상황이 계속 됐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개판이 돼버려서 후한은 점점 망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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