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삼국지 - 개판 오 분 전의 후한(159~166)


환제가 양기를 죽임으로써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정치를 기대하게 됐다.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양기를 죽일 때 주축이 됐던 환관인 선초, 서황, 구원, 좌관, 당형은 모두 현후로 봉해졌는데, 세상에선 이들을 5후라고 불렀고 정치도 이들을 위주로 돌아가게 됐다. 이외에 양기를 죽일 때의 공으로 다른 환관들도 향후로 봉해졌기에 결국 권력은 외척에서 환관으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이들은 이전에 양기 등의 외척들이 했던 대로 자신들과 가까운 이들을 각지의 지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를 통해서 민초들을 수탈하고, 호족들로부터 뇌물을 받고는 잘못을 묵인해주면서 자신들의 부를 늘려갔으니, 그 결과 환관들은 대토지를 소유하면서 수많은 노비를 두게 되었다. 당시 자영농들은 호족들의 고리대로 인해 토지를 잃으면서 소작농으로 전락해갔는데, 환관들의 이러한 처사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고, 이 때문에 백성들은 도저히 못살겠기에 점점 도적으로 변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바꾸려고 노력을 했다. 백마현령 이운은 환제가 환관들을 중용하는 것을 간하였으나, 이는 도리어 환제의 노여움을 사서 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게 됐다. 이를 말리던 두중도 똑같은 꼴을 당해 결국 두 사람 모두 옥중에서 죽었고, 진번, 양병, 목무, 상관자도 상소를 올려 용서해주길 청했다가 진번과 양병은 짤렸고, 목무와 상관자는 녹질이 2등급 깎여버렸다. 이 외에도 많은 간언이 있었지만, 환제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는 지방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5후인 선초의 조카 선광이 제음태수가 돼 개판을 치는 것을 연주자사 제오종이 조사한 후 탄핵하려다가 도리어 모함을 당해 귀양을 가게 된다. 이때 귀양지의 태수인 선초의 외손자 동원이 자기 일족을 제오종이 탄핵하려 했기에 오면 죽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제오종의 옛 관리였던 손빈이 제오종이 죽을까봐 빼돌렸고, 제오종은 이후 수년 뒤에 사면령이 내려질 때까지 이곳저곳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살아갔다. 이외에 다른 이들도 환관들과 관련된 불법을 처벌하려다가 훅 간 경우가 많았다.


당시 후한의 문제는 환관만이 아니었다. 날씨의 이변으로 많은 재해가 발생했는데, 홍수, 메뚜기, 역병, 지진, 우박 등이 여러 번 발생해서 안그래도 많지 않은 수확량이 더욱 줄었기에 백성들은 먹고 살 게 없게 됐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경우도 빈번했고, 특히 사예와 예주에선 아예 기근 때문에 죽은 이가 10명 중 4~5명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가문의 씨가 마르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니 조정에서 나서서 구휼해야 될 형편이었지만, 조정의 재정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당시 이민족들의 반란도 많아서 군비로 인해 많은 돈이 소모됐는데, 특히 강족들의 반란이 만만치 않아서 이에 관련돼서 투입된 돈이 영초 연간 이래 14년 동안 240억 전이 투입됐고, 영화 연간 이후 다시 7년 동안 80여 억 전이 사용됐다. 이렇게 많은 돈이 소모됐지만, 반란은 여전히 잠재우지 못해서 계속 발생했고, 이로 인한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기에 조정에선 대신들의 봉록을 줄이고, 왕후의 반년 치 조세를 빌려서 쓸 정도였다. 이걸로도 부족하니 관내후, 호분, 우림제기, 영사, 오대부를 팔아서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앙정치의 타락으로 지방도 마찬가지가 돼 제대로 된 인재들은 발을 붙이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런 이들과 호족들의 공존으로 백성들은 더욱 힘들어진 상황에 재해까지 겹치니 결국 이탈하는 이가 많아져서 조정의 수입은 갈수록 줄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남은 이들을 더욱 쥐어짰으나, 이는 민중들과 이민족들의 반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서 조정에선 또 막대한 재정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다 간신들에게 모함받아서 능력있는 이들은 물러나고, 허접한 이들이 자리를 차지했기에 반란도 역시나 제대로 진압하지 못해서 계속 발생했고, 이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돈은 들여도 효과는 별로 못보는 상황이 계속 됐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개판이 돼버려서 후한은 점점 망해가게 된다.


정사삼국지 - 중국 10대 부호 양기의 최후(146~159)


전에 이고가 환제의 등극을 반대하다가 쫓겨난 뒤 사람들은 대부분 양기에게 굽히기만 했는데, 유독 두교만은 그렇지 않았기에 조야에서 모두 그를 의지했다. 이후 양기가 환제가 제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봉읍이 1만 3천 호가 늘고, 양기의 동생 둘과 양기의 아들도 열후로 봉해지자 두교가 이를 간했으나 그의 간언은 무시됐다.

얼마 뒤 양기의 또 다른 여동생이 황후가 됐다.(언니는 태후) 이에 양기가 화려하게 양씨를 등극시키려고 했으나, 태위 두교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도를 들어 들어주지 않았다. 또 양기가 두교에게 부탁해 범궁을 상서로 삼으려고 했으나, 두교는 범궁이 뇌물을 받았었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양기가 열 받아 마침내 경사에 난 지진을 이유로 들어 두교를 짤라 버렸다.

환관 당형과 좌관이 함께 두교가 예전에 환제의 등극을 이고와 함께 반대했었다고 참소했다. 이에 환제도 역시 두교에게 원한이 생겼는데, 마침 전에 탈락했던 후보 유산을 황제로 옹립하려는 일이 벌어졌다. 양기는 이를 이용해 그동안 눈에 거슬리던 이고와 두교를 무고해서 이들도 역모에 관여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고는 잡혀서 옥에 갇혔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의 무죄를 호소했기에 태후가 이고를 사면시켜줬다. 이에 경사의 시가지와 골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이를 보니 이고의 명성과 덕망이 대단했기에 양기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또 다시 주청해서 역모사건에 얽어매 다시 이고를 잡아들였다. 결국 이고는 옥중에서 죽었다. 이후 양기는 사람을 시켜 두교에게 자살하면 처자식들은 온전할 거라며 협박했다. 그러나 이를 두교는 듣지 않아서 결국 잡혀가 이고처럼 옥중에서 죽었다.
 

이후 양기는 이고와 두교의 시체를 성 북쪽 사거리에 버리곤, 이곳에 와서 곡하는 이가 있으면 죄를 묻겠다며 엄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노력했기에 결국 고향에 돌아가서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처럼 양기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낸 이에겐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해줬으며, 자제하라는 충고를 들으면 무시했다. 또 자신에게 인재를 천거하지 않은 이는 체포한 뒤 집안사람들까지 60여 명을 죽여 버렸고, 이런 꼴을 피해서 먼저 자살하는 경우엔 특별히 처자식들을 살려 줬다. 자세히 적기엔 너무 많아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으나, 대충 양기가 어떤 인간인지는 전달됐을 거다.

양기는 권세가 대단했기에 당연히 그의 재산도 엄청났다. 양기는 식읍이 3만 호였고, 양기의 처인 손수도 양성군으로 책봉된 후 양적현의 조세도 받아먹음으로서 연간 수입이 5천만 전에 이르렀다. 이들은 이런 막대한 부를 가지곤 서로 경쟁하듯이 마주 보고 집을 지은 뒤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금과 옥과 진기한 물건들을 가득 쌓아두었다. 그리곤 드넓은 토지를 개척해서 어마어마한 땅을 소유했고, 노비도 수천 명을 뒀다.

이렇게 부자이면서도 양기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남의 재산에도 손을 댔다. 사손분이란 부자가 살았는데, 처음에 그에게 5천만 전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에 사손분이 3천만 전을 빌려줬더니, 양기는 분노한 뒤 사손분에게 누명을 씌워서 잡아다가 고문하며 그의 형제들은 옥중에서 죽게 했다. 이렇게 해서 양기는 사손분의 모든 재산인 1억7천여만 전을 몰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기의 권력은 더욱 강해져 예전의 소하가 유방에게 받은 특혜처럼 입조할 때 총총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됐고, 칼을 차고 나막신을 신고 어전에 들어와도 됐으며, 알현할 때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괜찮았다. 결국 나중엔 양기의 한 집안에서 전후로 일곱 명의 열후, 세 명의 황후, 여섯 명의 귀인, 두 명의 대장군, 부인과 딸로 식읍을 받고 군으로 불린 사람이 일곱 명, 공주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세 명에 나머지 구경, 중랑장, 하남윤과 경조윤, 교위 등을 지낸 이가 57명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거의 20년을 지내왔으니, 환제도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불만이 생기게 됐다. 이 불만은 태사령 진수를 양기가 멋대로 죽인 거로 더욱 커졌다가 마침내 양기가 남의 딸을 자기 딸로 만들려고 사람들을 죽이려는 것에 폭발한다.
 

마침내 환제는 몰래 5명의 환관을 모아 피의 맹세를 한 후 양기를 죽이기로 결의한다. 이를 양기는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이에 대비해서 중황문 장운에게 성에 들어가 숙직하면서 변란에 대비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이는 황제의 의향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한 거라서 도리어 꼬투리로 잡혔고, 환제는 이를 이용해 병사들을 파견해서 양기의 집을 둘러쌌다. 결국 양기는 자신의 처 손수와 함께 자살했고, 양씨와 손씨의 종친들은 모두 죽었다. 그 뒤 양기의 재물을 거둬서 처분하니 무려 30여 억 전을 거둬들일 수 있어서 조세의 반을 감해도 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사삼국지 - 황제를 독살한 양기(132~146)


광무제가 후한을 세웠지만 4대 황제 때부터 어린 황제가 등극하거나 단명하는 경우가 잦아서 대부분 태후가 섭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외척들이 권세를 쥐는 경우가 많았는데, 양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양기는 후한창업공신 양통의 후손으로 그의 여동생이 황후가 되면서부터 힘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그의 아버지인 양상이 순제의 신임을 얻었기에 대장군이 됐었는데, 양상은 외척치고는 그래도 나름 생각이 깊고 겸손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가 집권했을 때는 환관들로부터 충신을 지켜주거나 무고한 이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뒤를 이은 양기는 아버지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양기는 양상이 생존했을 때도 그의 포학함을 드러냈었다. 평소 술을 좋아하며 방탕하게 굴던 양기는 직무를 처리할 때도 멋대로 폭압과 불법을 저질렀고, 이에 보다 못한 양상의 친구 여방이 이를 알려서 양기는 양상에게 혼이 난다. 이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양기는 사람을 시켜 길에서 여방을 찔러 죽인 후 여방의 원수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 그의 종친과 빈객 100여명을 죽게 하면서 자신의 혐의는 벗었다.

이러던 그가 양상이 죽은 후 대장군을 이어받았으니 더욱 날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양기는 뇌물을 즐겨 받았고, 자신에게 뇌물을 준 이가 고발을 당하면 비호를 해주며 고발한 관리인 이고를 좌천시켰다. 그의 부패가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주군을 돌면서 현량한 이는 표창하고, 악한 이는 벌하라는 명을 받았던 장강이 더 큰 도적이 안에 있는데 밖에 있는 이들을 잡아서 뭐하겠냐며 자신의 임무를 그만두고 양기를 탄핵하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양씨들의 세력이 막강해서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양기는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장강을 도적들이 날뛰는 곳으로 부임시켜줬다.

순제가 죽고 나서 태자가 뒤를 이었지만, 나이가 겨우 두 살이었다. 덕분에 황후는 황태후가 돼 섭정했고, 이로 인해 양기의 권력은 더욱 강화됐다. 얼마 안가 태후는 조서를 내려 현량한 인재를 추천하라 했는데, 이때 황보규(황보숭의 백부)가 대책을 말하는 중 양기보고 좀 잘하라고 했다가 양기의 두뇌에 입력돼 결국 황보규는 강등됐다. 이에 병을 핑계로 귀향했으나, 주군에서 양기의 뜻을 받들어 황보규를 두 세 차례 죽음으로 몰아넣었었고, 마침내 황보규는 쥐 죽은 듯이 집에서 십여 년을 지내게 됐다.

충제가 제위에 오른지 일 년도 안돼서 죽었다. 이에 다음 황제가 될 후보로 유산과 유찬을 불러들였는데, 이때 대신들은 유산이 사람됨이 엄격하고 법도에 맞는 행동을 보여줬기에 모두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양기는 나이가 어려서 마음대로 하기 쉬운 유찬을 다음 황제로 정하고 즉위시켜줬다.


이당시 태후가 정사를 볼 때 태위 이고의 말을 잘 들어줬다. 덕분에 악행을 저지르던 환관들이 대부분 제거됐기에 평판이 좋았다. 이게 양기는 못마땅했었고, 전에 이고에게 당한 이들도 원한을 품었기에 그들은 합심해서 이고를 무고했다. 그러나 태후가 들어주지 않아서 이번엔 실패한다.

새로 등극한 황제인 질제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나름 총명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루는 양기를 쏘아보며 발호장군이라고도 한 적이 있었다.(발호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제멋대로 날뛰는 걸 말하는데 양기가 너무 개판을 치니까 대장군인데도 발호장군이라고 말했던 거다.) 이를 들은 양기는 도저히 잊을 수 없었기에 결국 주위 사람을 시켜서 떡에 독을 넣어 올리게 했다. 이를 모르고 먹은 질제는 점점 고통에 시달려하다가 태위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와서 연유를 물으니, 떡을 먹고 난 후 배가 계속 아프다며 물을 마시면 좀 살 거 같다고 했다. 이때 양기도 곁에 있었는데 토할까 두려워서 물을 못마시게 했다. 질제는 결국 양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이에 이고가 시신 앞에서 엎드려 통곡하고는 시의를 불러서 추궁하고 조사할려고 해, 양기는 일이 누설될까봐 더욱 이고를 증오하게 됐다.

황제가 또 단명해서 후사가 없었기에 대신들이 다시 모여서 후사를 논했다. 이때 대부분이 전에 후보에 올랐던 유산이 괜찮았기에 다들 그를 추천했으나, 중상시 조등(조조의 할아버지)이 일찍이 유산을 알현했을 때 무시당한 적이 있어서 환관들은 유산을 싫어했다. 이때 마침 양기도 유산보다는 유지를 맘에 들어하고 있었기에, 조등은 유산이 황제가 되면 양기가 그동안 지은 죄가 있어서 망한다며 유지를 세우라고 설득했다. 결국 양기는 유지를 세우기로 맘을 먹었고, 이에 따르지 않고 끝까지 유산을 미는 이고를 짤라버리고는 유지를 황제로 즉위시켜줬다. 이가 바로 그 유명한 환영제 중 한명인 환제로 그때 나이가 15세였다.


삼국지 신무장 150명 (은하영웅전설, 코드기어스) 5 삼국지신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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