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州刺史司馬休之頗得衆心,裕內懷忌憚,神谠二年,率衆討之,遣龍驤將軍蒯恩等為前軍。裕進領荊州刺史,加黃鉞。雍州刺史魯宗之率其子軌會休之于江陵。軌等軍敗,乃與休之俱奔襄陽。裕自領南蠻校尉。休之等奔姚興。裕為太傅、揚州牧;劔履上殿,入朝不趨,讚拜不名;置左右長史、司馬,從事中郎四人;餘如故。裕又領平北將軍、徐兖二州刺史,增督南秦州,尋督中外諸軍事。
형주자사 사마휴지가 자못 뭇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어, 유유는 속으로 꺼렸기에, 신당 2년, 군을 이끌고 그를 토벌하며, 용양장군 괴은 등이 전군이 되게 했다. 유유는 영형주자사에, 황월이 더해졌다. 옹주자사 노종지가 그의 아들 노궤를 이끌고 사마휴지와 강릉에서 합쳤다. 노궤 등의 군이 패하여, 사마휴지와 함께 양양으로 달아났다. 유유가 스스로 영남만교위가 됐다. 사마휴지 등이 요흥에게로 달아났다. 유유가 태부, 양주목이 돼, 검리상전, 입조불추, 찬배불명을 얻었으며, 좌우장사, 사마를 두며, 종사중랑 4인을 뒀고, 나머지는 이전과 같았다. 유유가 다시 영평북장군, 서연이주자사가 됐고, 독남진주가 더해졌으며, 이윽고 독중외제군사가 됐다.
裕志傾僭晉,若不外立功名,恐人望不許,乃西伐姚泓。自領征西將軍、司豫二州刺史,尋領北雍州刺史,加前後部羽葆鼓吹,增班劔為四十人。子義符為中軍將軍,監太尉留府事,給鼓吹一部。右僕射劉穆之為左僕射,領軍、中軍二府軍司,入居東府,揔攝內外。穆之謂龍驤將軍王鎮惡曰:「公今委卿以關中,卿其勉之。」鎮惡曰:「吾今不克咸陽,誓不濟江,而公九錫不至者,亦卿之責矣。」裕率衆軍至彭城,加鎮北將軍、徐州刺史。遣中兵參軍沈林子自汴入河,冠軍檀道濟與王鎮惡步出淮肥,裕將王仲德汎濟入河。德宗封裕十郡為宋公,加相國、九錫,僭擬魏晉故事。王鎮惡進至冝陽,獨取潼關,沈林子自襄邑屯于陝城,姚泓諸將不能抗。始裕入河西上,太宗遣將軍娥清、長孫嵩等屯於河畔。裕遣朱超石、劉榮祖等渡河,長孫道生破之,擒斬其將楊豐等。裕遣將軍王仲德、趙倫之率沈田子等入武關,屯軍青泥。沈林子由秦嶺會田子於堯柳城。姚泓率衆數萬,不戰而還。裕至關頭。鎮惡至渭橋,破泓軍於橫門。裕至長安,執姚泓以歸,斬于建業市。裕以其子義真為雍州刺史,鎮咸陽。進裕為宋王,增十郡,置百官,一擬舊制。裕還彭城。
유유는 참진을 기울일 뜻이 있었으나, 만약 표면적으로 공명을 세우지 못하면,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 염려돼, 요홍을 목표로 서벌하였다. 스스로 영정서장군, 사예이주자사가 됐고, 곧 영북옹주자사가 돼, 전후부에 우보와 고취를 더했으며, 반검을 40인으로 늘렸다. 아들 유의부는 중군장군, 감태위유부사가 됐고 일부에 고취를 더했다. 우복야 유목지는 좌복야, 영군, 중군이부군사가 돼, 동부에 들어가 살며, 내외를 모두 다스렸다. 유목지가 용양장군 왕진악에게 이르길
「공께서 이제 경에게 관중을 맡기셨으니, 경은 이에 힘쓰도록 하시오.」
왕진악이 말하길
「내가 이제부터 함양을 함락하지 못한다면, 강을 건너지 않을 거라 맹세하나, 공에게 구석이 이르지 못하면, 이는 다만 경의 책임일 뿐이오.」
유유가 군을 이끌고 팽성에 이르니, 진북장군, 서주자사가 더해졌다. 중병참군 심림자는 변수에서 황하로 들어갔고, 관군 단도제와 왕진악은 걸어서 회사에서 출발했으며, 유유의 장수 왕중덕은 제수에서 배를 타고 황하로 들어갔다. 사마덕종이 유유에게 10군을 봉하며 송공이 되게 하고, 상국, 구석을 더하며, 분수에 넘치게 위진의 고사를 흉내냈다. 왕진악이 의양에 이르러, 홀로 동관을 취했고, 심림자가 양읍에서 나와 섬성에 주둔하니, 요홍의 제장들은 대적할 수가 없었다. 비로소 유유가 황하에 들어가 서쪽으로 올라오니, 태종(탁발사)이 장군 아청, 장손숭 등을 보내 강가에 주둔하게 했다. 유유가 주초석, 유영조 등에게 도하하게 하나, 장손도생이 이를 격파하고, 그의 장수 양풍 등을 잡아 죽였다. 유유가 장군 왕중덕, 조륜지가 심전자 등을 이끌고 무관에 들어가게 하여, 청니에 군을 주둔시켰다. 심림자는 진령에서 나와 심전자와 요유성에서 합쳤다. 요홍 등이 군 수만을 이끌었으나, 싸우지 않고 돌아갔다. 유유가 관두에 이르렀다. 왕진악이 위교에 이르러, 요홍의 군을 횡문에서 격파했다. 유유가 장안에 이르러, 요홍을 잡고는 돌아가, 건업의 저자에서 죽였다. 유유는 그의 아들 유의진이 옹주자사가 되게 하여, 함양을 지키게 했다. 나아가 유유가 송왕이 됐고, 10군을 더했으며, 백관을 두고, 옛 제도를 모두 흉내 냈다. 유유가 팽성으로 돌아갔다.
赫連屈丐掠渭陽,義真遣沈田子率軍討之。田子退軍陘上,鎮惡往就田子議之,田子斬鎮惡於幕下,又殺其兄弟羣從七人。田子馳還,云「鎮惡有異志」,義真長史王脩執而斬之。義真與左右多為不法,王脩每裁割之,左右咸怨,白義真曰:「王脩以關中阻險,兵食又足,欲謀反叛,冝早圖之。」義真遂遣左右殺脩。裕聞之,以朱齡石為雍州刺史。義真發自長安,將走江東,諸將競收財貨,次於灞上。赫連昌率衆追之,旣至青泥,義真大敗,蒯恩與安西司馬毛脩之並被擒獲,參軍段橫,名犯高祖廟諱,單馬負義真走歸。朱齡石亦棄長安,奔就龍驤將軍王敬先于曹公故壘,旣而城陷,被執見殺。
혁련굴개가 위양을 약탈해, 유의진은 심전자에게 군을 이끌고 이를 토벌하게 했다. 심전자가 지레목 위로 군을 물려, 왕진악이 심전자에게 가 그와 의논했는데, 심전자가 왕진악을 막하에서 죽이고, 또한 그의 형제와 부하 7인도 죽였다. 심전자가 급히 돌아와,「왕진악이 모반하려고 했습니다.」라고 이르니, 유의진의 장사 왕수가 그를 잡아 죽였다. 유의진과 좌우 여럿은 불법을 저질렀는데, 왕수가 매양 이를 분별하여 처리하니, 좌우에선 모두 원망하여, 유의진에게 아뢰길
「왕수는 관중이 험난하고, 병사와 군량 또한 충분한 것에 기대, 모반을 꾀하고 있으니, 마땅히 서둘러 그를 처리해야합니다.」
유의진이 마침내 좌우사람들에게 왕수를 죽이도록 했다. 유유가 이를 듣고, 주령석이 옹주자사가 되게 했다. 유의진은 장안을 떠나며, 장차 강동으로 가려 했는데, 제장들이 재물을 다퉈 거둬들이며, 파상에 이르렀다. 혁련창이 군을 이끌고 그를 추격해, 곧 청니에 이르니, 유의진은 대패하여, 괴은과 안서사마 모수지가 나란히 사로잡혔고, 참군 단횡은, 이름이 고조의 묘휘를 범했는데, 단기로 유의진을 짊어지고는 돌아갔다. 주령석 또한 장안을 버리고, 달아나 용양장군 왕경선이 있는 조공의 옛 보루에 갔지만, 이미 성은 함락돼, 붙잡혀 죽었다.
德宗死,裕立德宗弟德文,裕又自增十郡。裕遣司馬傅亮赴建業,令徵己入輔。德文禪其位,遂自號為宋,改年為永初,時泰常五年也。裕旣僭立,頻請和通,太宗許之。六年,裕遣其中軍將軍沈範、索季孫等朝貢。七年五月裕死。
사마덕종이 죽어, 유유는 사마덕종의 동생 사마덕문을 세우고, 다시 스스로 10군을 늘렸다. 유유는 사마 부량을 건업에 가게 한 뒤, 자신을 불러들여 입보하게 했다. 사마덕문이 선양하여, 마침내 송이라 자호하며, 연호를 영초라 고치니, 당시 태상 5년이었다. 유유가 이미 참위하고는, 번번이 화통을 구하여, 태종이 이를 허락했다. 6년, 유유가 그의 중군장군 심범, 색계손 등을 보내 조공하였다. 7년 5월 유유가 죽었다.
- 2011/09/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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